다양하면서도 상충되는 도덕에 접해서 우리는 어느 것이 참된 도덕인가를 묻게 된다.

 이 질문은 윤리나 도덕은 상대적인가 아니면 절대적인가 하는 질문과 일맥 상통한다.



·윤리와 에티켓
 윤리는 일종의 명령으로 구성된 규범과 가치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규범과 가치관은 전통과 관습 속에서 내재하고 있으며 가정과 학교 교육을 통하여 우리의 심성 속에 깊숙히 박혀 있다.

 에티켓은 우연한 습관의 산물이기에 격률을 가벼운 마음으로 따르면 된다.

 그러나 윤리나 도덕의 경우에는 이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따를 수 없다.

 도덕 규범이 우리 마음 속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에티켓의 경우에는 관대할 수 있지만, 우리와 다른 도덕 규범에 접했을 때 우리가 관대할 수 없고 비판적인 태도를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대론적 윤리설과 절대론적 윤리설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도덕적 진리의 존재를 부정하고 도덕의 보편 타당성을 부정하는 입장을 상대론적 윤리설(윤리적 상대주의)이라 하고, 그 반대의 입장을 절대론적 윤리설(윤리적 절대주의)이라 한다.

 상대론적 윤리설에 의하면 도덕 규범은 어떤 것과 관련하여 상대적인 타당성만을 가진다.

 절대론적 윤리설은 보편 타당한 삶의 원리가 인생의 목적 또는 행동의 법칙으로서 선천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고 본다.

 이렇게 윤리설은 크게 목적론적(상대성) 윤리성과 법칙론적(절대적) 윤리설로 나누어진다.



·윤리는 상대적인가
 상대론적 윤리설이 호소력을 가졌다고 보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도덕과 관습의 문화적 다양성, 도덕 문제의 해소될 수 없는 의견 불일치 현상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같은 문화권 내에서도 각자의 관점에 따라 대립된 대답이 나온다.

 가치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일치된 견해가 없기 때문이다.

 도덕과 가치의 문제에는 초문화적인 독립된 기준이 없다.

※도덕의 보편 타당성을 부정하는 상대론적 윤리설은 우리는 심각한 혼란 상태에 빠트릴 수 있다.



·과연 보편 타당한 윤리는 존재할 수 없는가
 도덕 규범이 문화적으로 다양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언뜻 보기에는 규범들이 서로 다르고 모순되는 것 같지만,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면 모두가 똑같은 원리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던커(K.Dunker)라는 독일의 심리학자는 같은 원리를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상반된 행동과 관습이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동기를 우리의 기호에 맞춰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은 아닐까?

 설사 문화권들이 매우 일반적인 도덕 원리를 공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이것이 문화권 사이의 충돌, 대립을 해결해 주기에는 충분치 못하다.



·객관적 기준으로 도덕의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
 인간 본성의 공통성에 호소하여 보편 타당한 도덕 원리를 수립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도덕의 본질적인 기능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필요를 조화롭게 만족시키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인간은 유사한 욕구와 필요를 가졌고, 이 욕구와 필요를 조화롭게 만족시키는 도덕 규칙이 타당하다면 우리는 여러 도덕들의 객관적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기준을 얻은 셈이다.

 그러나 몇몇 종류의 도덕률의 보편 타당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상대론적 윤리설을 포기해야 하는가?

 일반적 규칙과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해석의 문제는 계속 의견 대립을 낳고 있다.

 각자의 종교, 세계관, 인생관에 따라 그 대답은 달라진다.

 일반적인 규칙을 공유한다는 것은 구체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윤리적 상대주의는 실천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윤리적 상대주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도덕과 가치가 보편 타당한 진리는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이 경우 우리가 가지게 되는 태도는 자기 중심주의적인 폐쇄적·독선적 태도가 아니라,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해·관용하는 개방적인 태도일 것이다.

 상대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보다 개방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갖게 하는 장점이 있다.

※상대론적 윤리설은 옳은 것도 없고 옳지 않은 것도 없다는 도덕적 허무주의에 빠지게 하여 도덕 문제에 관한 확신을 가질 수 없게 하고 어떤 도덕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없게 하기도 한다.
Posted by 灰狼†古虹
 통상 '종말론'은 역사의 종말을 가정하는 비관적인 이론 및 종교로 이해한다.

 그러나 종말론은 단순히 비관적인 내용만을 말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의 종말은 천년 왕국의 실현을 의미하는 것으로, 더이상 변화되어야 할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 종말은 인류의 완성과 실현으로서 어느 시기가 되면 천년 왕국이 실현된다는 매우 낙관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다.

 일본인 사학자 후쿠야마가 쓴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에서는 '종말'을 인류의 파멸이 아니라 역사의 완성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낙관적이든 비관적 관점이든 종말론적 역사 이론은 더 이상 역사가 발전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는 동일한 입장을 취한다.



·필연성으로서 역사의 진보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하면 이성적 주체에 의해 역사가 진보한다는 근대적인 사고는 역사에 일정한 목표가 있다고 보는 목적론이며, 이러한 목적론은 인간을 특정한 목적에 종속시키는 전체주의적 성격을 지닐수밖에 없으므로 비판되어야 한다.

 인간 사회와 역사는 인간의 의식과 의지를 매개로 해서만 성립될 수 있다.

 역사에도 법칙이 있다고 옹호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의지나 의식이 변경할 수 없는 구조적 필연성이 있기 때문에 사회나 역사도 역시 법칙적으로 파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때의 법칙은 구조적 필연성, 역사적 필연성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역사적 필연성을 옹호하는 이론을 '결정론'이라고 말한다.



·역사적 필연성과 인간의 자유
 역사적 필연성만을 일면적으로 강조하게 되면 역사가 필연적 법칙에 의해 발전하는 만큼 인간은 아무런 실천을 할 필요가 없게 되며, 인간의 실천이 없는 역사의 발전이라는 모순적인 결론이 나올 수 있다.

 나아가 역사 과정 속에서 인간의 의지와 의식에 의한 선택의 자유는 존립할 수 없게 된다.

 포퍼(K.Popper)는 역사에 필연적 법칙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은 틀림없이 전체주의에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포퍼는 사회나 역사 과정에서 인간의 의식과 의지에 의한 선택을 강조하면서 개인의 의식적 선택, 자율적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 '열린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개인의 자율적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 '열린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개인의 자율적 선택을 강조하는 경향을 '자유주의'라고 부른다.

 이론적으로 보면 자유주의는 역사가 진보하는 방향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결정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개인들의 무정부적인 자유에 따른 혼돈이 야기될 뿐 사회 전체의 변화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결정론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들
 필연성과 인간의 자유는 역사를 설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두 축이라 할 수 있다.

 결정론과 자유주의는 그 나름의 정당성을 지니면서 서로 화해할 수 없는 평생선을 그을 수밖에 없다.

 미래 사회에서는 오히려 문화적 요소가 보다 중요해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역사 과정에서 결정론을 약화시키면서 다양성과 다원성을 도입하고자 한다.

 그러나 문화적 요소를 일면적으로 강조할 경우 문화 결정론이 될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나아가 과연 문화가 역사에서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Posted by 灰狼†古虹
·이데올로기 시대의 종언
 최근 몇몇 미래학자들은 이데올로기가 종언을 고했다고 주장한다.

 컴퓨터 및 정보 통신의 발전과 포스트 모디즘의 등장으로 '다품종 소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기술적 조건 아래서 노동과 소유가 결합된 형태로 생산이 이루어지므로 전통적 의미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은 의미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육체 노동에 의한 생산에 비해 정신 노동에 의한 생산이 보다 높은 생산이 보다 높은 생산력을 갖기 때문에 전통적 의미의 육체 노동자를 자본주의를 지양하는 주요한 세력으로 간주하는 것은 시대 착오적이라는 것이다.

 정보 통신의 발전은 세계의 지역적 분할을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세계적 차원의 통합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이율 배반적 관계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주장하는 견해에는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삶을 왜곡하고 억압하는 것이며 따라서 인간의 삶으로부터 배재되어야 할 것으로 보는 관점이 전제되어 있다.

 이데올로기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그것이 과학적 인식을 방해·왜곡한다는 의미에서이며, 근대 이후의 기계적 세계관과 자연과학에 근거하여 중세의 종교적 도그마를 비판하면서부터이다.



·반과학으로서의 이데올로기
 이데올로기의 현실적 의미는 중세 기독교적 도그마에 대한 과학의 투쟁으로부터 형성된다.

 근데 이후 자연 과학의 발전은 중세의 종교적 세계관을 봉괴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근대 이후의 자연 과학은 혁명적 이론의 중심에 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 과학의 발전에 기초한 기계적 세계관을 정당화하려는 철학적 시도는 무엇보다 우선 종교적 도그마로부터 해방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과학과 이데올로기를 명백하게 구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근대의 자연 과학과 철학들은 이데올로기를 과학의 반대[안티(反)테제]로 간주함으로써 인지적 영역에서의 오류로 파악한다.



·이데올로기로서의 과학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의하면 과학과 기술, 나아가 그것에 기초한 기술적 합리성은 그것이 특정 계급의 이해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배의 원천과 그것의 모순을 은폐,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사회에서 인간을 합리적으로 통제하고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또 과학과 기술이 특정의 가치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가치 중립적인 것이라고 간주하는 과학 기술에 대한 맹신은 '기술 합리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낳는다.

 이러한 관점에 따른다면 과학과 기술이 사용에 따라 그것이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 기술 그 자체가 인간의 소외와 허위의식, 즉 이데올로기를 낳는 근원으로 간주된다.



·인간은 과연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공동체 속에서 살게 되는데, 사회의 구성원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을 통합시킬 수 있는 이념적 통일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각 구성원들이 하나의 사회 공동체를 이룰 떄 필연적으로 그 공동체의 통합을 형성, 유지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요구된다.

 만약 사회의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없다면 그 사회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탈이데올로기라는 이데올로기
 '탈 이데올로기론'. '이데올로기 종언'. 즉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경제가 지배하는 사회라는 이념도 결국 그것이 우리의 삶을 통합하고 규제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다.

 이처럼 '경제' 이데올로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면, 이데올로기란 개념은 여전히 사회를 분석하는 데 매우 유용한 개념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데올로기를 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따라서 하나의 관점과 개념만을 배타적으로 선택하기보다는 현실을 분석하는 데 적절한 다양한 관점을 그떄그떄마다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Posted by 灰狼†古虹
 도로주행 붙었습니다.

 한번 떨어졌었는데...... 딴것보다 5만원이 너무 아까워 죽겠습니다.

 이제 면허 나오는걸 기다리면 되는군요.

 다시 운동이랑 포스팅이나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망량의 요람 코믹스판 잠깐 봤었는데 이거 원래 소설도 있다는군요

 재밌으면 사려고 하는데 어떤지 아시는분?
Posted by 灰狼†古虹
·개인과 사회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개인보다는 사회 전체의 공익을 우선하는 사회 체제를 전체주의라 한다.

 개인의 이익과 자유를 우선하는 사회체제를 개인주의라 부른다.

 인간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사회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라고 할 때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주의'는 특정한 사회 체제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다른 사람과의 이해 관계를 표현하는 용어인 '이기주의'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기주의의 반대는 이타주의이며, 반면 개인주의의 반대는 전체주의이다.



·개인은 사회에 능동적이며 수동적이다.
 각 개인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사회를 구성하며, 각 개인들의 활동으로 거시적 사회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또, 각 개인들의 의지에 따른 행동이 곧 인간의 역사를 이루어 간다.

 개인들이 없다면 사회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같은 점에서 각 개인들은 사회에 대해 능동성을 갖는다.

 특정한 사회에 속한 개인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 사회의 의식구조나 문화에 동화된다.

 사회적 특성이 구성원에게 이입되는 것은 거의 무의식적이며 불가항력이라 할 만큼 수동적으로 이루어진다.

 개인의 위치나 사회적 환경들은 그의 행동을 제약하고 영향을 미치는 제약조건이 될 수 있다.



·개인이 우선인가, 사회가 우선인가
 개인주의는 개인의 능동성을 중시한다.

 사회 계약설에 따르면 사회는 각 개인들로 구성된 개인들의 집합체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개인의 이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사회 혹은 국가는 개인들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각 개인들의 계약에 의해 만들어졌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곧 국가 전체의 이익과도 일치하게 된다는 것이 개인주의의 입장이다.

 전체주의는 사회의 능동성(개인의 수동성)을 강조한다.

 사회 혹은 국가는 개인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연결됨으로써 그 자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기능한다.

 국가가 있음으로써 개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전체주의의 기본적 입장이다.



·개인의 이익과 공익의 조화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분명 다르지만 이기주의와 연결되기 쉬운 경향이 있다.

 이런 문제점을 없애기 위해서는 국가나 사회가 개입하여 각 개인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전체의 공익을 위해 약간의 조정을 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나타난 것이 공리주의이다.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모든 결정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공리주의는 개인주의의 바탕 위에서 전체의 공익을 도모하고자 시도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이익은 사회 전체의 공익과 더불어 추구되어야 한다.

 그리고 개인의 자유는 공동체 안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책임과 더불어 누려져야 한다.
Posted by 灰狼†古虹